[TDR21V] 챕터 2 <희망문학 - 나의 절망 오렌지나무> -1
아팠습니다.
집에는 저와 아버지뿐입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년이라 혼내셨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걸레라고 부르며 저를 괴롭혔습니다.
아버지는 바깥에선 잘 웃으시지만, 어째선지 저에게는 웃어주시지 않습니다.
힘들었습니다.
친구들도 저를 떠났습니다.
아무도 저를 봐주지 않았습니다.
그 고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
[딩동댕동~ 여러분, 아침 시간입니다. 오전 일곱 시예요! 오늘도 힘차게 가봅시다~]
"... 으으..."
간신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이 악몽이 끝났다 싶었지만, 비몽사몽이 깨고 나니 여전히 개인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슬슬 일어나서 아침을 먹어볼까 하고 침대에서 내려가려고 했지만... 어째선지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하반신이 무거웠다.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음냐아.. 헤헤... 세이카짱 좋아해... 아앙 거긴 안됏... 으흐흐..."
기분 나쁜 잠꼬대를 시전 하는 분홍색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뭐냐, 꿈에 내가 나오는 거냐. 대체 꿈속의 나한테 무슨 짓을 당하는 건데.
"어이, 미무라, 일어나. 아침이라고.
... 어이 미무라!"
... 꿈쩍도 하지 않는군. 어떡하지.
고민하고 있던 중, 모노모노폰에서 '띵동'하는 알림음이 들렸다. 폰을 켜서 채팅 앱을 살펴보니, 마모리가 어디 있길래 오지 않냐며 부르고 있었다.
모노모노폰의 채팅 앱은 처음에는 잠겨 있었지만, 학급재판을 종료한 뒤, 어째서인지 잠금이 풀려 있었다.
{금방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리 문자를 보내 놓고 어떻게 미무라를 깨워야 좋을지 망설여봤다.
"으헤헤, 좋아 세이카 짱~ 쮸 해줘~ 쮸쮸~"
... 뭐라는 거냐 이 여자...
조금 장난 좀 쳐 볼까 하는 생각으로 확, 미무라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머리카락에서 기분 좋은 샴푸 향이 풍겼다.
"가까이서 보니까 좀 귀엽네."
그대로 약 20초 정도 응시. 역시 바라보는 것만으론 일어나지 않았다.
대체 뭘 해야 미무라가 일어나 내 다리에서 몸을 치워줄까 생각하던 그 순간.즈큐우우우우우우웅
"?"
미무라가 내게 얼굴을 들이밀더니, 자신의 입술을 내 입술에 포갰다. 갑자기 무슨 상황이냐 이건.
천천히 눈을 뜨는 미무라.
눈을 크게 뜨더니, 얼굴이 붉어지면서...
"...!?"
놀랄 줄 알았다.
그래도 싸대기는 안 때려서 다행이네.
적당히 얼굴을 뒤로 뺐다.
"... 네가 먼저 한 거야. 내 탓 아니니까 알아둬."
".........에?"
"그러니까, 네가 잠꼬대하면서 뒤척이다가 널 가만히 보고 있던 나한테 그런 거라고. 알았냐?"
".........응."
오늘은 조용히 끝나서 다행이구만.
츠키시마 학원에 갇히고 6일째,
첫 학급재판 다음날.
다들 이전처럼 들떠있지는 않았다. 그럴 만 하지. 가까이 있던 사람이 둘이나 죽었으니.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여~ 너희들, 좋은 아침."
"아아, 좋은 아침 이치노사키. 힘든 건 좀 날아갔어?"
"유감이지만 여전해. ...하룻밤 새에 완전히 사라지는 게 이상하겠지만.
...마모리는?"
"아직 개인실에서 나오진 않은 것 같아. 본 사람도 없고."
"이상하다, 아까 채팅할 땐 식당에 있는 것 같이 말하더니.."
대충 아침을 먹고 식당을 나왔다. 우선 어딘지 모르겠지만 가버린 마모리부터 찾아볼까. 그리고 찾을 겸...
"...미무라."
"아?! 응, 왜 그래냥..?"
"...왜 그렇게 풀죽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가자. 마모리 찾으러."
"으, 응..."
아까 잘 땐 그렇게 실실거리더니, 이상하군...
1층 전체를 둘러봤지만 마모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개인실이거나... 우리가 모르는 곳일지 모른다...라고 생각했다.
기숙사를 향해 걸어가던 도중, 들어갈 수 없던 양호실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아, 참고로 너희가 학급재판을 클리어할 때마다 너희가 갈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니까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2층이랑 기숙사의 대욕탕도 열렸으니 한번 보고 가~"
어디선가 나타난 모노쿠마가 그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2층과 양호실, 대욕탕이란 말이지... 그럼 양호실부터 볼까.
양호실은 역시 새하얀 벽과 커튼, 침대가 보였다. 약사 선생님이 쓰는 데스크와 약 찬장도 있었다. 창문으로는 기숙사의 안뜰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이치노사키 군, 미무라 양. 멋지죠?"
"그러게, 별로 온 적은 없지만 깔끔해 보인다냥."
"저, 저는 이제부터 여기 있을테니, 무슨 일 있으면 꼭 여기로 와 주세요."
"괜찮아? 계속 있겠다는 건 살인의 표적이 될지고 모른단 뜻인데.."
"괜찮아요. 그 저기.. 저어기 창가 보이시죠? 저 창가를 통해 나오면 바로 기숙사에요. 제 개인실도 가까우니까, 금방 갈 수 있을 거에요."
"그렇구나. 조금 걱정되지만,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할게..!"
시루시와 대화 후, 양호실에서 나와 2층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2층은 1층보다 꽤나 넓어보였다. 게다가 1층에선 못 본 일반 교실이 보였다. 그 외엔 도서관과 트레이닝룸, 화학실이 차례차례 나타났다.
3층으로 가는 계단은 아직 막혀있었다.
"트레이닝룸부터 가볼까냥? 왠지 마모리라면 근육 트레이닝이라던가 할 거 같으니까냥."
"그럴까? 그럼 가보자."
트레이닝룸은 예상대로 러닝머신, 윗몸일으키기, 아령 등 운동기구, 요가매트부터 짐볼까지, 운동에 필요한 것들이 다수 보였다. 그리고...
"...아, 여어~ 세이카!"
...어째 날 이름으로 부르는 녀석이 요즘따라 늘어난 것 같다?
"마모리! 너 아침은 먹은거야?"
"아아, 먹었고 말고! 오늘부터 트레이닝룸이 열렸길래 전력으로 여기서 운동할 생각이야! 완전 내 놀이터라고!"
...으, 그뉵시러. 아니 큼... 마모리 녀석, 역시 운동을 좋아하는군. 아무래도 진짜로 하루종일 여기 있을 생각인가 보다.
"그런데, 저 안쪽에 있는 문들은 뭐야?"
"아, 저건 탈의실이야. 안에 어째선지 우리들 16명의 체육복들이 전부 구비되어 있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입고 나온거지!"
"헤에..."
적당히 인사하고 트레이닝 룸에서 나와, 화학실로 들어갔다.
"뭔가 실험실이란 느낌이다냥..."
"화학실이니까 뭐.."
카츠라기가 좋아할 만한 곳이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카츠라기가 튀어나왔다.
"아, 이치노사키 군, 미무라 양!"
"역시 있었냐. 실험할거야? 하는 거면 우린 조용히 나갈게."
"괜찮슴다! 여기서 빠져 나갈때까지 당분간 실험은 안 할거니까요."
"그래? 그럼 적당히 조사하다 갈게. 우린 신경쓰지 마."
"넵!"
화학실이라고 별 게 있진 않았다. 포름알데히드, 염산, 석회암, 질산가스 등, 화학과 관련된 것들이 주욱 진열되어 있을 뿐이었다.
역시 적당히 둘러보고,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
"아, 이치노사키, 코토코."
"오? 안나 짱이랑 미스즈 짱! 안녕이다냥~"
"쉿."
세키가하라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조용히 주의를 줬다. 근처의 안나가 신경쓰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로 보였다.
"아, 미안해냥. ...뭐 읽고 있냥?"
"조각의 역사. ...대단해. 내가 모르는 것들도 실려있어. 여기 이 이콘들(*정교회의 종교적 상징인 예술품. 조각 말고도 그림같은 것들도 포함된다.)은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야. 아름다워..."
세키가하라는 역시, 자기 재능에 맞게 미술품에 대해 꽤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츠미기리는?"
"츠루기는... 다른 곳에 있어. 잠시 혼자 있겠대."
"헤에, 항상 붙어다니던 둘이 떨어져 다닐 줄이야..."
"...세이카 짱, 난 잠시 여기 있을게냥. 잠깐 책이라던가, 읽고 싶어서..."
"응? 아, 그래. 그럼 나중에 봐."
...둘러볼만한 건 이 정도인가.
그럼, 이제 남은 하루는 누구와 지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