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DR21V] 챕터 1 <절망 학원 살인사건> -3
"너희들 모두 모였지? 하나, 둘, 셋... 좋아, 다들 모였으니 지금부터 중대 발표를 하겠어요~"
체육관으로 모인 우리에게 모노쿠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티슈 박스 크기의 종이 상자를 하나 꺼냈다.
"우선 이 안에서 아무 종이나 하나 가져가주세요!"
다들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전원을 모아서는 다짜고짜 종이를 뽑으라니, 반장 선거라도 하려는 건가? 일단, 종이는 뽑아야겠지. 안 뽑으면 교칙 위반이다 뭐다 하면서 처형할지 모를 노릇이니 말이다.
오십음순으로 나와 뽑았기에, 제일 먼저 내가 뽑고, 그 다음으로 에도가와 양, 카케미즈 군, 카츠라기, 카네타, 안나 양... 계속 순서대로 미무라 양, 호시카게 양, 그리고 나가사키까지 16명 전원이 종이를 뽑았다.
"자아, 지금 너희들이 뽑은 그 종이가, 이번에 내가 나눠줄 '동기'입니다! 그 동기에는 너희들 각자의 비밀이 진실과 거짓이 섞인 채로, 무작위로 분배되어 있지요~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살인이 일어나기 전까진 혼자만 알고 있으세요, 다른 사람에게 알려줬다간 규칙 위반으로 처벌을 내릴 겁니다! 그럼 오늘 발표는 여기까지야~ 그럼 다들 수고해~ 우뿌뿌뿌뿌~"
그러고는 다시 사라지는 모노쿠마.
'동기'라고? 무엇의 동기지?
"방금 동기라고 나눠준 이건, 아무래도 누굴 죽이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요?"
그리고 던져진 타카하시의 한 마디. 확실히 그것도 일리있는 말이었다. 모노쿠마가 우리에게 원하는 건 살인 외엔 단연코 없을 것이다. 분명 4일이나 아무 일 없는 상태로 있으니 저쪽도 슬슬 질렸기 때문이리라.
"장치라... 그럼 난 안 볼래. 굳이 누굴 죽이고 싶지도 않고."
"나도냥~ 누굴 죽일 바에야 카네타한테 벤치프레스로 목말타는 게 나아냥~"
"저기?! 여자애한테 관심받는 건 좋지만 막노동당하는 건 별로 좋지 않거든? 게다가 나 힘도 별로 없고..."
"...츠루기, 가자."
"음? 아, 그래."
에도가와의 말을 시작으로 학생들은 서로 동기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듯 하나 둘 수다를 떨며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이치노사키, 넌 안 갈거냐?"
"난... 조금 있다 나갈게. 생각이라던가, 좀 해야할 것 같아서."
"그렇냐? 그럼 난 먼저 간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나와 타카하시, 호시카게 양, 시루시 양, 안나 양, 던케르크 군, 카케미즈 군, 쿠로자와 뿐이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동기."
"...일단 다들 열어볼래?"
"전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그저 종이일 뿐이니까 안에 뭔가 있지도 않겠고, 실제로 이렇게 만져 봐도 안에 뭔가 있다는 촉감도 없으니까. 분명 뭔가가 '적혀'있는 거겠지."
"그럼 여기서 열 사람만 열어보죠. 대신 규칙대로 아무에게도 자신의 동기를 말하지 말기로 하고요."
호시카게 양과 안나 양의 제안으로 각자의 동기를 여기서 열어 보기로 했다.
어디, 내 동기는...
「시루시 쿠스리는 호시카게 유키무라를 좋아하고 있어!」
...뭐야 이거 무서워.
순간 나도 모르게 꽤나 멸시적인 시선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 이건 모르겠다. 아무래도 카네타에게 갈 동기가 타겟이 나로 잘못 정해져서 온 건가? 당최 모르겠다.
일단 약속대로 동기의 내용은 비밀로 하자. 가뜩이나 본인들이 있으니 이건 더더욱 당연히, 비밀로 해야만 한다.
"다들 보셨죠?"
"...이건 뭐지 도대체..."
"동기고 뭐고, 이런 걸 준 의도를 모르겠어."
다들 나와 비슷비슷한 반응이었다. 왜 이런 걸 받은 지 모르겠다는 표정.
단 몇 명만을 빼고는.
"...아무튼 우리도 해산하자. 이 이상 여기서 뭘 해봤자 진전은 없을거야."
"그래, 일단은 각자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그게 좋겠네. 그럼 난 이만..."
그리고 쿠로자와를 선두로, 남아있던 학생들도 차례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이치노사키와 호시카게, 시루시는 내일 정오에 내 개인실로 와 줘."
"어째서죠?"
"그건.. 지금은 말할 수 없어. ...그럼 나도 갈게."
카케미즈 군이 감시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래도 모노쿠마에겐 들려줄 수 없는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저녁 시간, 각자에게 동기에 대해 따로 물어보기로 했다.
"딱히 보고싶진 않아서 적당히 개인실에 놓아 뒀다만."
"관심 없어서 안 보고 찢어버렸데이. 와 그라나, 설마 니는 본 기가?"
"너한텐 알려주고 싶지만, 역시 규칙이 있으니까. 미안하다."
"봤는데 기억 안 남다."
다들 정말로 별 생각 없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세키가하라 양, 혹시 그 동기 쪽지 봤어?"
"...봤어."
"...어떻게 생각해?"
"딱히, 그냥 거짓말 같아."
"그렇군..."
그녀에게서도 별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역시 규칙이 있기 때문인지 쉽사리 알려줄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이치노사키... 잠깐 따라와 봐."
"응?"
갑자기 내게 말을 건 세키가하라는 내 팔을 붙잡고 자기 개인실의 샤워실로 날 데려왔다.
"...여긴 CCTV 없으니까, 모노쿠마가 우리 얘기를 들을 수 없을거야. 그럼 말할게...
'나가사키 사쿠라는 널 죽이려 하고 있어'라고 적혀 있었어."
"그렇군... 그건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네."
"그렇지? ..이 정도면 된 거야?"
"아, 으응. 알려줘서 고마워. 그럼 난 먼저 나가볼게."
"응. 난 오늘은 더 이상 나가지 않을거야. 미리 좋은 밤."
"좋은 밤."
싱겁게 대화를 끝마치고 세키가하라의 개인실에서 나왔다. 시계는 9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곧 심야 시간이 될 것이니 이만 나도 자러 가는 게 낫다 생각해, 곧바로 자신의 개인실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 때...
"저기, 호시카게 양..."
"네?"
누군가와 호시카게 양의... 대화.
기숙사 기둥에 숨어 용태를 살펴보았다. 카네타가 보였다. 앞에 있는 인물은 가려져서 보이지 않지만 호시카게 양이겠지.
무슨 대화를 하는 지 귀를 기울여 들어보았다.
"저, 저기... 괜찮다면 나랑 사귀어 줘!"
"네? 무슨 말씀이신지.."
"처음 입학식 때 만나고부터 계속, 너한테 반해 있었어! 고귀한 분위기부터 푸른 눈동자, 착한 마음씨까지, 정말 좋아해..!"
"..."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고백에 꽤 놀란 것 같았다. 하긴 나라도 저랬겠지.
잠시 아무 말도 없던 호시카게가 대답했다.
"...미안해요, 카네타 군. 유감이지만 이 고백은 받아줄 수 없어요. 지금 이 살인게임도 있지만, 전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아아, 이건 이거대로 녀석한테 꽤나 큰 데미지겠군.
그것보다, 내가 받은 이 동기 쪽지, 사실이었던 거냐...
"그렇구나... 미안. 그.. 방금 고백은 잊어줘. 정말 미안해. 그, 좋은 밤 보내."
"네, 카네타 군도, 그리 풀죽지 말고 좋은 밤 보내세요."
그렇게 대화는 끝났다. 아무래도 이건 다른 친구들에겐 비밀로 해 두는 게 좋겠지.
마침 심야시간 방송이 울려, 나도 개인실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 없는 하루가 이어졌다.
"좋은 아침, 흐암..."
"여어, 카네타. 좋은 아침이야."
"..."
카네타는 아무래도 잠을 제대로 못 잔 것 같다.
호시카게는 그와 비교해서 상태가 좋았다.
"근데 너희들, 카케미즈 못 봤어?"
"응?"
"확실히 아침부터 안 보이네요... 평소 같으면 제일 먼저 식당에 나와 밥을 먹고 있을 텐데..."
"아침부터 먹고서 천천히 찾아볼까? 개인실에서 놀고 있는 거 아닌가 몰라~"
개인실에 있다 해도, 그 성실한 카케미즈 군이 이렇게나 늦는 건 역시 걱정되었다.
"어라어라, 혹시 살인이 일어난 거 아냐?"
그리고 뒤에서 나타난 모노쿠마가 말했다.
...모노쿠마?
"끼야아아악!! 뭐꼬 니는!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가!"
나가사키가 놀라 펄쩍 뛰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모노쿠마는 그런 그녀를 보며 우뿌뿌 웃기만 할 뿐이었다.
"우뿌뿌, 우뿌뿌뿌뿌~ 어쩌면 이미 누군가 죽었을지도~?"
"그러고 보니, 안나 양과 미무라 양, 세키가하라 양도 안 보임다."
"...설마?!"
식당을 나와 달렸다. 정신없이 달려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은 이미 안나 양의 개인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살아있어 줘, 살아있어 줘, 제발...이라고 연신 생각했다. 왜 안나 양이 살아있길 바라는 지는 아직도 모른다.
문을 벌컥 열었다. 침대... 그녀는 없었다. 테이블에도 앉아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샤워실... 물 소리가 들려왔기에 아닐거라 생각했지만, 참을 수 없어 벌컥 열었다.
그곳에 보이는 건-
"...어딜 벌컥 쳐 열고 앉아있는 거야 돼지새꺄!!!!"
"커헉?!"
알몸 상태로 비명과 함께 나에게 아이언 클로를 날리는 안나 양이었다.
"...아무리 당황했어도 정도가 있지. 노크 좀 하라고."
"미, 미안..."
어째서인지 개인실에 비치되어있던 로프로 몸을 묶인 나는 안나 양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상당히 당황했는지 얼굴을 붉히고는 꽤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하긴 남자가 자기가 씻는 도중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하지.
"하여간 남자들은.. 오늘만 봐 주는 줄 알아."
"알았으니까 용서 해 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나 양은 괜찮았다.
지난 날 바깥에서 큰 소리가 여러번 들려 잠을 설치고 말았기 때문에, 결국 오늘 늦게 일어나 버렸다고 한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일렀다.
[딩동댕동~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학생 전원은 발견 장소인 체육관으로 모여 주세요~]
"시체?!"
"일단 가보자!"
"자, 잠깐 이거부터 풀어줘!"
"진짜, 그러게 왜 문을 멋대로 열어서!"
밧줄을 풀고 우리는 황급히 체육관으로 달려갔다.
체육관에 도착해보니 나와 안나 양을 제외한 모두가 모여 있었다. 미무라 양도, 세키가하라 양도 무사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내가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체육관의 농구 골대에는, <초고교급 신문기자> 카케미즈 쵸지 군의 시체가 걸려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