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DR21V] 챕터 1 오마케 : 사이좋기계

2021. 10. 24. 04:34TDR21V - 소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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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양~ 에도가와 양~"
"응?"

모노쿠마는 갑자기 나를 불러세우고는, 이상한 기계를 건네줬다.

"괜찮으면 이거 받아줘~ 내가 주는 학급재판 클리어 기념 특전이야~"
"...쓸모없는 장난감이면 버린다."
"그거, 가장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쓰면 엄청 재밌는 일이 일어난다구~? 우뿌뿌~"

그리 말하고 모노쿠마는 "그럼 안녕~ 쓰는 건 네 몫이야~"라 말하곤 가버렸다.

"뭐지, 이건."

기계의 뒷면에 설명서가 있었다.

사이좋기계

  1. 이 기계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써야 효과가 적용된다.
  2. 작동은 빨간 버튼을 눌렀을 때 작동된다.
  3. 장치의 유효 기간은 하루이며, 중도 해제, 파괴는 불가능하다.
  4. 다른 자에게 넘겨줄 경우 교칙위반으로 처형한다.

꽤 그럴듯하게 써 놨지만, 역시 장난감같네.
...


"그래서, 자네가 이 기계를 내 앞에서 쓰겠단 말인가."
"그래. 말귀는 알아 듣네."

솔직히 참을 수 없다. 탐정으로서의 호기심이 들끓었다. 이 자식을 죽여주기라도 하는 거면 참 좋겠군. 분명 모노쿠마도 그걸 바라고 하는 걸거야.

"그럼, 작동한다."
"그래."

꾹.
...뭐야, 아무 일도 없잖아...라고 말하려던 순간.
기계에서 이상한 빛이 나오더니, 나와 츠미기리의 시야를 가렸다.
약 5초 쯤 뒤, 시야가 정상적으로 돌아왔을 때는...

"...어?"

츠미기리의 한쪽 팔과 내 한쪽 팔이 묶여있었다. 그것도 붉은 색 밧줄로.

"몸이... 묶였어?!"
"호오...?"
"싫어!!! 이딴거 끊어버릴 테야..!"

밧줄을 세게 잡아당겨 보았지만, 어째선지 밧줄은 내 손을 통과할 뿐, 잡일 생각이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밧줄이 안 잡혀...
그럼 이, 이 상태로 하루동안...
이 개새끼랑 붙어서 하루를 지내라는 거야?! 이 곰탱이 새끼, 쳐죽여줄테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뭐, 그리 화내지 말게. 고작 하루만 버티면 될 것을.."
"고작?! 고오오작 하루우우~? 난 니새끼랑 같이 하루씩이나 보내는 게 싫단 말이야!!"

무심코 울상 짓는 얼굴로 내 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물론 그 남자는 별 반응도 없었다.

"...배고픈 건가?"
"안 고파!!"

여름이었다.
아직 4월이지만.

~~~

그 후 2시간 정도, 여러 실험을 해 보고, 몇 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다.
첫 번째, 두 사람이 떨어질 수 있는 거리는 고작해야 3m 남짓이다. 그 이상은 무슨 수를 써도 늘어나지 않았다.
두 번째,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점심 먹을 겸 식당을 돌아다니던 도중, 카네다에게 "웬 일로 에도가와랑 츠미기리가 같이 다니냐"라는 소리를 들었다. 붙어 다니는가가 아닌 같이 다닌다라는 말에서, 밧줄이 보이지 않음을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카네다가 밧줄을 못 봐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세 번째, 이 자식은 진짜로 도움 안 된다. 정확히 말하면 더럽게 눈치없다. 이 녀석들한테 "어쩔 수 없이 같이 다니게 됐다"라 하면 내가 좋아서 널 끌고 다닌다 생각하게 되잖아...

"하... 이제 어떡하냐..."

기숙사 안뜰에 있는 벤치에 앉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놈은 타들어가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무표정인 그대로다.

"...일단 이대로 버티자. 어쩔 수 없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자식이 의외로 고분고분하게 내 말을 따라준다는 거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하루는 의외로 문제없을지도 모르겠군. 상으로 오늘부터 널 네녀석이라고 불러주마. 그게 그거지만.

"그래서, 이제부터 어쩔건가?"
"나야 모르지. 차라리 여기서 죽치고 앉아있고 싶은데."

첫 학급재판 이후로 생각이 많아졌다.
우리 속에 숨어있는 흑막, 살인을 강요하는 모노쿠마, 살인학급생활과 학급재판.
20년 전, 키보가미네 학원 78기생이 겪은 일련의 사건들과 일치했다.
이 츠키시마 학원에서의 살인학급생활이 그것의 재현이라면, 여기에도 어딘가 허점이 있을 지도 몰
른다.

"...여, 에도가와여."
"아... 앙? 왜 그래."
"실은 미스즈와 약속한 일이 있어서 가야 해서 말일세.. 미안하지만 그... 같이 가주겠나."

... 방금 네녀석이라 불러주겠다 한 건 취소하마.
다시 이 자식이라고 불러주마. 그게 그거지만.

"...츠루기."
"왜 그렇지?"
"그... 유카리는 왜 데려왔어?"
"에도가와는 그... 감시역이라네, 혹시라도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지 지켜보기 위해서.."
"신경쓰지 마, 미스즈 짱. 조용히 있을테니까 말이지."
"...알았어."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듣지 않도록 노력했다. 실제로 그닥 잘 들리지도 않았다.
솔직히 이 상태로 하루가 지나가길 바랬다. 저 녀석과는 이 이상으로 얽히고 싶지 않았다.
누가 뭐라 해도, 츠미기리 츠루기는 살인자니까.
살인 해부학따위, 놈이 만든 허구에 불과하다. 허가받은 시체로 연구하든, 사람을 죽여 연구하든,
그가 사람을 죽인 것에 변함은 없다.

"...정말 괜찮은거야, 츠루기? 에도가와가 있어도."
"아아, 괜찮네. 에도가와는 나와는 다르게 믿음직한 자야. 분명 나보다 도움이 될 테니... 난 그녀를, 내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지키고 싶네."

...하아? 무슨 오글거리는 소릴 하는 거야, 쟨. 일단은 모르는 척 하자.

"저기... 츠루기는 나보다 유카리가 좋아?"

뭐?

"...싫진 않다네. 다만, 그녀가 날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그녀와는 대등한 관계로 있을 자격은 없어."
"...어려워."
"아, 쉽게 말하자면, 그녀와는 그저 친한 친구로 있고 싶을 뿐이란 걸세. 그녀는 아니겠지만..."

...뭐야, 저 녀석. 의외로 저런 생각도 했던 거냐.
별 감정 없는 녀석일 줄 알았는데 의외네.
이 구속이 끝나면... 아주 조금은 친구로 인정해줄까.

미스즈가 돌아가고, 츠미기리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고생했네, 에도가와. 미안하군, 자네에게 폐를 끼쳤어."
"알았으면 제대로 갚아 이 자식아.
...그리고, 적어도 여기서 나갈 때까진, 그... 친구...로 대해 줄 거니까."
"...생각보다 귀엽군, 그대는."
"뭐야 이 새꺄?!"
"커헉!"

옆구리에 팔꿈치 태클. 비상시에 쓰려고 배운 호신술이 이런 식으로 쓰일 줄이야.

"...아무튼! 일단은 이제부터 너도 친구로 대할거니까 말야! 알았냐?! ...츠미기리 츠루기."
"..."

사람이 누군가에게 진심이 되면, 이렇게 마음까지 바뀌는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조금은 감사해야 할지도.

"...아, 미안하다만 에도가와여. 잠시 화장실에 같이 들어가주지 않겠나. 그... 볼일 때문이다만. 이 상태라면, 한쪽 화장실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니..."
"...시간 3분 줄 테니까. 빨리 가자. 여기로."

일단은 급히 여자화장실로 들어오긴 했는데, 아무래도 실수였나.
여자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야생의 미무라가 나타났다!

"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야생 미무라의 울음소리!
츠미기리의 공격이 떨어졌다!

"자, 잠깐 미무라! 오해야! 그런 게 아니라, 잠깐 사정(事情)이..."
"사정(射精)!?!? 이 변태들!!! 그런 건 개인실에서 하라고 냐아아앙!!! 냥냥 펀치나 받아!!!!"

야생 미무라의 냥냥 펀치!
콰직, 효과는 굉장했다! 츠미기리와 에도가와는 쓰러졌다! 꽤나 아프다..!

"이, 일단 후퇴!! 도망쳐!!!"

샤샤샥.

어떻게든 개인실에서.. 볼 일을 마친 츠미기리가 샤워실에서 나왔다.

"...처음부터 이렇게 하면 됐잖아."
"남자에게 이런 건 힘들단 말일세. 이해해주게나."
"..몰라. 그것보다, 우리 잘때도 한 침대에서 자냐?"
"아마... 그렇겠지?"
"아이고 두야..."

[딩동댕동~! 심야시간이 되었습니다, 교칙에 따라 체육관과 식당은 심야시간동안 통행 금지구역이 됩니다! 그럼 좋은 밤 보내세요~]

"...잔다고 이상한 짓 하면 가만 안 둘거니까 각오해, 츠미기리 츠루기."
"그대야말로 이상한 짓 하지 말게나. 에도가와여."


하루가 지났다.

"...밧줄은 안 풀렸네."

이 자식, 잠버릇 없어서 다행이지만 너무 죽은 것 처럼 자서 오히려 무섭다. 대체 뭐야...

"일어났나?"
"캬아악?!"

쥐죽은 듯이 조용히 있던 츠미기리 츠루기가 갑자기 일어나며 말을 걸자, 무심코 놀라 침대에서 떨어질 뻔 했다. 혼잣말한 걸 들었나...

"깜짝이야, 놀라 죽을 뻔 했네. 어디 시간이... 9시인가. 다들 밥은 다 먹었을 시간이네."
"그럼 우리도 천천히 먹으러 가도록 하지."
"츠미기리 츠루기 주제에 나한테 지시하지 마. 나 그렇게 남 명령 들을 만큼 고분고분하지 않으니까."
"알겠네. 그럼 자네 의견에 따르도록 하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정오가 되면서, 우릴 묶고 있던 밧줄이 풀렸다나 뭐라나. 정말 지옥같은 하루였지만, 나름 추억에 남을 만한 하루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챤챤☆

오마케 - 사이좋기계
Fin.